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내린 결론이 전쟁입니다. 그저 지능만 높으면 지성인이 되는 걸까요? 우리는 종종 지성인과 지식인이라는 단어를 비슷하게 받아들이지만 두 단어는 명확히 다릅니다. 지식인은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 말 그대로 똑똑한 사람에 가깝고, 지성인은 습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다운 삶과 공동체의 안녕을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즉 전쟁 뒤에 가려진 '생명의 무게'를 인지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일반인이던 지도자이던 반복되는 무례함은 오히려 지능이 낮다는 증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식이 많다고
지성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을 자랑하지 않는 것이 지성입니다.
지식으로 사람을 탓하지 않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 지성인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전쟁을 해야 하는 이유가 그들에게는 분명 있을 것입니다(이 정도면 있었야만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무고한 일반 시민이, 어린이들과 갓난 아기가 희생되어야 하는 이유는 대체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 나라의 시민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라면 이 결과가 더 이해되지 않습니다. 본인 나라의 안위나 이익을 위해서라고 해도, 이해는 쉽게 되지 않습니다. 네, 누군가는 이익을 얻게 될 전쟁이겠죠. 일단 저는 그 이익이 뭔지도 궁금하지 않네요.
그냥 아무도, 특히 죄 없는 영혼들이 허무하게 희생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문제가 무엇이든, 그 해결책이 전쟁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뿐입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지성인일까요? 책 속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진짜 지성인입니다.
자연이 숲을 이루고 살듯,
인간은 인간의 숲을 이루고 삽니다
숲의 나무들은 서로 더 많은 햇빛을 차지하려 다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땅 밑에서 뿌리를 통해 서로 영양분을 나누며 의지합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옆의 나무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숲을 이루어 모진 바람을 견디는 것일 거예요.
결국 지성이란, 나의 안위가 타인의 고통 위에서 결코 온전할 수 없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떨어지는 포탄 속에서 이름 모를 아이의 눈물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감이야말로 지성인의 힘입니다. 거창한 승리보다 무구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왜 이토록 아프게 배워야 할까요.
아이들이 평범한 일상을 찾을 수 있기를.
차 한 잔의 여유,
그 소중함을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에게는 당분간 허락되지 않을, 평범해서 소중한 이 순간에 우리는 지금 편히 머물고 있습니다. 모두 함께 슬퍼하자고 이 비극을 꺼내 놓은 것은 아닙니다.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작은 평화를 묵묵히 지켜내 보자는 마음입니다. 지금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기꺼이 곁을 내어주는 일, 날 선 말 대신 온기를 담은 인사 같은 것들이면 충분합니다.
자연이 그러하듯 인간이 하나의 숲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교한 지능이 아니라, 서로를 품는 지성입니다.
당신의 오늘 하루도, 부디 그 어떤 위협도 닿지 않는 평온한 숲속이기를 바랍니다. 자연에게도, 우리에게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고통받는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도 마침내 시리지 않은 봄이 찾아오길 간절히 소망합니다.